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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원 원숭이학교 교장 (59) 전 국제복싱연맹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얼마 전 인천 계약구 의회 출입문을 부순 혐의로 입건된
국제복싱연맹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출신 A씨는 정비원씨 입니다.

전북 부안에서 원숭이 공연장을 운영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여파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런 행동을 한 것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공연장을 휴업해 생계 유지가 어려운데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정비원은 프로복서 출신으로 1986년 국제복싱연맹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대한민국 복싱 역사에 이름이 있는 
선수입니다. 

 

 



 



서울 상도동에서 3남 3녀 다섯째로 태어난 뒤 전북 부안으로 
이사해 중학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국 최초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의 경기를 보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복싱의 길로 입문했다는 
정비원 선수. 

 

 


1972년 시작한 아무추어 복싱선수로의 삶은 역시 고단했다고 합니다. 
참가비 숙박비를 모두 자비로 충당하는 생활로 어려운 형편에 
더 힘들었지만 프로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념으로 더욱 
실력 향상에 매진했고 세계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비원 선수는 이후 은퇴를 한 뒤 1990년 sbs에서 복싱중계를 
하다 지금의 원숭이학교 사업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업가로 인생2막을 열었지만 좋은날보다는 안좋은 
날이 많았고 그렇게 다른 사업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일본원숭이 
단체공연인 닛코사루군단 쇼를 관람하면서 원숭이학교를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코사루군단에서 3년동안 프로그램 노하우와 

원숭이 조련비법을 전수받고 2002년 전북 부안에 처음  
원숭이 학교를 열었습니다. 초기 원숭이들과의 질서 위계순서를

바로잡기 위해 원숭이 우리에서 동거동락하면서 무리에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원숭이 학교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방방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접근성 문제도 있고 인기도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숭이 학교 공연장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복싱선수로 살아온 인생이 18년, 이제는 원숭이학교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2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정비원씨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원숭이학교 공연

중단은 심각한 경제적 피해로 다가온 듯 합니다.

비단 정비원씨 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최전선에서

일하시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동일하게 닥친 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빨리 이 어려움이 해소되어

모두 즐겁게 웃는 날이 오길 기도하겠습니다.